격투사 카세레스와 그의 스승 로페스가 실전같은 스파링을 하고 있다. |
사정없이 발길질이 나가고, 번개같은 주먹질이 오간다.
물론 정식으로 타격하지 않지만 거의 실전에 가깝다.
두 남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한 남자는 24살, 다른 한 남자는 53살.
아들과 아버지 사이같은 두 남자는 벌써 한시간째 뒹굴고 있다. 1일 오전, 도쿄 신주쿠의 힐튼호텔. 2501호의 실내는 개조됐다. 모든 가구를 빼내고 바닥에 매트를 깔았다. 3일 열리는 ‘유에프시 인 재팬’ 선수 숙소인 힐튼 호텔은 이 방을 선수들의 훈련 장소로 만들었다. 출전 선수들은 번갈아 이 방에 와서 몸을 푼다. 마침 한국의 ‘미스터 퍼펙트’ 강경호(25·부산 팀매드)와 맞붙는 미국의 알렉스 카세레스(24)가 자신의 스승인 마누엘 로페스(53)와 훈련중이었다. 준비 운동을 마친 카세레스와 로페스는 3분 3회전의 스파링을 했다. 주먹이 몸통과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와 두 몸이 바닥에 나뒹굴며 내는 요란한 소음이 실내를 가득 채운다. 모자가 있는 검은 운동복을 입고 머리까지 가린 카세레스는 마치 일본의 닌자처럼 날렵하게 공간 이동을 한다.
제자의 주먹에 눈 주위가 찢어진 스승. |
운동을 마치고 땀을 빼기 위해 제자의 몸을 타울로 감아 주고 있는 스승과 마치 미이라처럼 흰 타울을 두르고 누워있는 제자. |
벌써 나흘째 거의 먹지 않고 땀을 빼고 있다. 정신은 혼미해지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신경은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날카롭기만 하다. 지옥의 감량이다. 링에 올라가 싸우는 것은 차라리 쉽다. 빨리 계체량을 끝나고 먹고 싶다. 일반인들은 1~2kg의 몸무게 변화에도 신경을 쓰는데 격투기 선수들은 경기를 앞두고 일주일에 10여kg씩을 뺀다. 그야말로 `죽음의 감량 전쟁‘이다. 오죽하면 감량하다가 졸도하는 선수까지 생길 정도다. 3일 일본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동시 출격하는 한국 격투사 3인방인 김동현(32), 강경호(26),임현규(28)도 막판 감량에 지옥을 오가고 있다. 1일 숙소인 도쿄 신주쿠의 힐튼호텔에서 마무리 훈련중인 세명의 격투사들은 마무리 훈련을 겸한 감량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마카오 대회에서 감량하다가 졸도하며 데뷔전을 못치르고 귀국했다가 이번에 다시 유에프시 데뷔 기회를 잡은 임현규는 계체량 하루를 앞두고 한계 체중에 1.6kg을 오버하고 있다. 순조로운 편이다. 임현규는 지난해 12월부터 일찌감치 몸무게를 줄이기 시작해 웰터급 한계 체중인 77㎏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임현규가 운동하지 않을 때의 평소 몸무게가 95㎏ 정도이니까 16㎏ 이상 뺀 것이다. 얼굴에 살이 거의 없다. 지난 마카오 대화에서는 하루 앞두고 7kg정도를 빼야 했기에 몸이 고장났다. 휘청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자! 현규야, 24시간 남았다. 계체량 끝내고 마구 먹자.” 임현규를 지도하는 전찬열 코리아탑팀 대표는 안쓰러운지 큰 소리로 임현규를 격려한다. 의문이 생긴다. 미리미리 체중을 빼 놓으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을텐데. 이유가 있다. 대회 앞두고 체중을 급하게 빼야 계체량을 마치고 하루 있다가 열리는 경기 당일 체중을 크게 불려 링에 오를 수 있다. 체중이 나가야 힘이 생기고 상대를 압도할 수 있다. 임현규는 하루만에 10kg을 불릴 수 있다. 온 몸의 수분이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계체량을 하고, 수분을 섭취하면서 탄수화물 등을 섭취하면 체중이 금방 늘어난다. 체중 감량으로 인한 근육손실을 최대한 줄여 파워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하지만 한계체중에 다다르면 단 100g도 쉽게 줄지 않는다. 침을 수시로 밷고, 침이 생기지 않으면 혀에 안티프라민을 발라 침을 강제로 배출한다. 몇일째 사우나만 하면서 먹지 않는 형국이니 선수들이나 감독 모두 죽을 맛이다. 이번엔 강경호 차례이다. 강경호 역시 감량 탓에 평소 깎은 듯이 잘 생긴 얼굴이 엉망으로 변했다. 우선 옷을 모두 벗고 온 몸에 특수 크림을 발랐다. 이 특수 크림은 땀구멍을 열게 해 수분이 잘 배출되게 만든다. 최근 미국에서 샀다고 한다. 이날 훈련하기전 한계체중에 2.5kg 넘친 강경호는 옷을 여섯벌 끼어 입었다. 땀복도 두벌 입었고, 두터운 추리닝도 두벌. 그리고 줄넘기를 한다. 땀이 나올때까지 3분뛰고 1분 쉰다. 다행히 10여 분만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강경호의 평소 체중이 75kg인데 한계체중 61kg에 거의 접근했으니 14kg 정도 뺀 상태이다. 지난 몇일간 먹은 것은 목 축일 정도의 물과 바나나 몇조각. 눈에 초점이 왔다갔다 한다. 양성훈 부산팀매드 감독과 스파링하는 강경호의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흐른다. 3분을 뛰고나면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어지러워요. 물 좀 주세요.“ 강경호의 신음소리가 흘러 나온다. 양 감독은 “오늘 흘린 땀의 양을 보면 이제 한계체중에 충분히 도달했다고 봅니다. 하루동안 잘 유지하면 될 것 같아요”라며 만족해 한다. 마지막으로 `맏형‘ 김동현이 나타났다. 경기 당일 임현규가 가장 먼저 옥타곤에 오르고, 다음이 강경호, 그리고 김동현은 막판에 경기를 치르기 때문에 가능한 그 시간에 맞춰 훈련을 해왔다. 김동현은 비교적 여유가 있l다. 하루 앞두고 비록 한계체중에 3kg 정도 오버하고 있으나 쉽게 그 체중에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현 역시 땀을 빼기 위해 옷을 두텁게 껴입고 줄넘기와 스파링, 그리고 바닥을 뒹굴며 그래플링 기술을 익혔다. 특히 날아 올라 무릎으로 상대의 안면을 공격하는 `플라잉 니킥‘을 집중적으로 연마했다. 훈련장에 옥타곤걸로 데뷔하는 이수정씨가 응원을 왔다. 순간 처졌던 분위기가 환해진다. 마침 3.1절. 태극기를 들고 온 이수정씨는 “막판 힘내세요”라며 귀요미 표정을 보인다. 땀을 흘리며 기진맥진해 쓰러졌던 강경호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나타났다가 이내 사라졌다. 이들의 경기는 3일 오전 9시 케이블채널인 <슈퍼액션>에서 생중계된다. 도쿄/글 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